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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의 역사

PTSD의 역사

PTSD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정보를 친절하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정신적 외상에 대한 첫 문헌은 기원전 8세기에 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문헌에는 전투상황에 놓인 군인들의 공포와 두려움의 심리 상태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과정도 기술하여 정신적 외상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았을 때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극한 상황에 대하여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대화재 이후 기술된 증상, 철도사고에 의한 '터널 질환', '철도 척추(railroad spine)', 오펜하임(Hermann Oppenheim)의 '외상성 신경증', 크레펠린의 '공포 신경증(Schreckneurose)' 등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설명한 개념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군인을 대상으로 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초기 개념은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병사들이 심장 증상을 많이 호소함으로써 붙여진 다코스타심장 과민증후군(irritable heart)이라는 개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일차세계대전에서 영국부상병들을 치료한 찰스 마이어스(Charles Myers)가 처음 사용한 '탄환 공포(shell shock)'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개념이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당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전투 중 신체적 부상을 입지 않은 군인들의 경우 옆에서 소리를 갑자기 내면 심박수가 2배 정도 증가하는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유사증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비록 당시에는 환경적 요소보다는 마음속의 무의식적 갈등에 의해 정신질환이 생긴다는 정신분석이론의 영향으로 무시되었지만, 직접적으로 포화에 노출되지 않은 군인들에게도 이런 증후군이 나타남을 관찰함으로써 단순한 신체질환이 아닌 정서적인 원인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이차세계대전 당시의 군인들의 불안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전투 스트레스 반응(combat stress reaction)‘ 이란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아브람 카디너(Abrahm Kardiner)는 그의 저서 "전쟁의 외상 신경증(The Traumatic Neuroses of War)“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환자들의 증상을 자세히 기술하였고, 이전의 외상과 현재의 증상을 비교하며 이전의 잘못된진단(히스테리아, 꾀병, 간질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환경의 위협에 대해 환자들이 각성과 예민함을 계속 보인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였고,그가 주장한 '생리신경증(physioneurosis)'은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개념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었습니다.
이후, 베트남전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개념의 현대적 정립에 기여하였고,1990년대 일어난 일차 걸프전 등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게 됩니다.

한편,정신의학의 측면에서는, 20세기 들어서면서 '재난정신의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스티엘린 (Edward Stierlin)이 극한 상황에서 정신 건강을 잘 지켜나간 사람들을 연구함.
그는 연구를 통해 격렬한 감정이나 공포가 '공포신경증'이나 '외상성 신경증'의 원인 중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였고, 이런 과도한 감정에 의해 신경계 저항이 감소하여 결국 신경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1952년 정신의학의 공식적 진단 체계인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이하 DSM) 제1판에 대스트레스성 반응 (gross stress reaction)을 포함시킴으로써 PTSD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었다.
1984년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에는 PTSD라는 병명이 처음 등장하였고,‘진단 및 통계 편람 4판’부터는 외상의 주관적인 반응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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